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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종중법 제정이 시급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4/01/17 [07:54]


[e조은뉴스/ 이대현 논설위원 겸 편집이사] 독자들의 입장에선 후기정보화사회를 지나 탈정보화까지 운위되는 마당에, 그것도 인터넷보급률 세계1위인 한국에서, 생뚱맞게 웬 ‘종중’ 운운이냐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나면 얘기가 사뭇 달라진다. 우리의 가장 뿌리 깊은 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뤄온 성씨본관제도 하에서 대한민국 국민치고 “〜공(군)파 종중”으로 통칭되는 대소종중의 종중원 아닌 이가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종중의 뿌리를 이루는 성씨제도와 본관제도에 근거한 성씨와 본관의 분포를 대략 살펴보면 2000.11.기준으로 성씨가 286가지, 본관이 4,179가지로 조사됐는데, 성씨 중에는 10대성(김,이,박,최,정,강,조,윤,장,임)이 전체인구의 64.1%로, 성씨 중 39.2%,본관 중 66.5%는 1천명 미만의 규모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종중단체등록 현황(1996.6.현재)을 보면, 인구 약 15만의 김천시에 518개, 약 30만의 구미시에 598개로 집계됐다. 그 지역이 대구안동[과거 영남유림의 본거지] 인근지역으로 비교적 전통문화중시 경향이 강한 지역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45만 인구에 1천개가 넘는 종중단체가 등록된 점에 미루어, 미등록 종중(단체)을 포함하면, 전국적으로는 최소한 10만개 이상의 종중(단체)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해 볼 수 있다. 

물론 한 사람이 대중소 상하 종중(단체)에 중첩적으로 소속돼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많은 종중(단체)이 존재할 개연성이 크다.

종중이란 우리 판례에 따를 때, “공동선조의 후손들에 의하여 선조의 분묘수호 및 봉제사와 후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단체로서 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후손에 의하여 성립하는 것이며,20세 이상 성인 남자를 종원으로 인정한다.”고 정의돼 왔다. 

그러나 2005년7월, 대법원이 용인이씨 사맹공파 기혼여성 5명이 종중회원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종중의 목적과 본질을 살펴볼 때 같은 선조의 후손은 남녀 구별없이 종원이 돼야 한다”며 “여성도 종중 회원임”을 인정함으로써, 여성도 재산분배 등에 있어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민법상 성년기준도 2013.7.1부터 19세로 낮아져, 이제는 19세 이상의 성인남녀 모두가 완전 대등한 종중 회원으로서의 권리의무를 갖게 되었다. 

한편 종중이 규약이나 관습에 따라 선출된 대표자 등에 의하여 대표되는 정도의 조직을 갖추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면, 비법인 사단으로서의 단체성도 인정되고 있다. 종중의 법적 성격은 비법인 사단[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서, 내부적으로 종중재산 등의 소유관계에서는 단체성이 강한 총유관계로 보는 것이 우리 법원의 태도이다. 1927.9.23조선고등법원 연합부판결 전까지 공유관계로 인정되다가, 그 이후 1960년 신민법 제정까지는 합유로, 신민법 제정 이후에는 일관되게 총유관계로 파악해 오고 있다.

오늘날 종중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산업화도시화의 급속한 진행과 더불어, 산업용지로서의 국토개발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지가의 급격한 상승, 종중소유부동산의 수용 건수가 폭증하면서, 수용보상금의 배분 등을 둘러싸고 총유권자로서의 종중원들 간의 재산분쟁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총유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우리 민법규정은 불과 4개 조항에 불과하여, 총유권자들의 권리의무관계를 실효성 있게 규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법원은 종중의 의사[議事]에 관해 민법의 사단법인, 상법상의 주식회사 이사회 및 총회관련 규정 등을 준용하면서, 나름의 판례법을 형성해오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민주화법치주의의 정착과 함께 권리의식이 급신장한 오늘날의 역동적인 현실을 통일적으로 실효성 있게 규율하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종중(단체)의 총유권자들 간 권리의무관계를 통일적으로 실효성 있게 규율해줄 단행법[가칭 “종중(단체)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약칭 “종중법“]의 제정이 매우 시급하다.

전 국민이 종중원 아닌 사람이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종중의 재산분쟁을 비롯한 종중분규가 봇물을 이루고 있음에도, 국회와 정부가 국민통합, 특히 공동체의 기초단위인 가족과 씨족집단의 화합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종중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가히 직무유기라 할 만하다.

물론 단일민족 운운의 순혈주의나 배타적 씨족관념은 시대착오적 측면이 있고,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나, 전통문화와 현대적 국제규범 간의 충돌이나, 문화지체를 극복함으로써, 전통문화를 창의적으로 계승창달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살리면서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동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도 종중법 제정은 매우 절박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종중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이것을 바라보는 국가기관의 태도는 통상, “임의자율단체인 종중이 내부적으로 구성원들끼리 평화롭게 잘 알아서 해결하지 못하고 왜 그런 문제까지 공권력에 호소해 해결하려 하느냐?”는 시각을 보인다. 한 마디로 임의자율단체의 내부적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국가기관마저 이러한 오불관언의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대부분의 대소 종중들이 내부적으로 불거져 있는 재산문제의 처리 등, 종중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둘러싸고 종중원들 간의 분쟁으로 사분오열돼 집행부 불신은 물론, 구성원 개인들 간에도 심각한 불화에 이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종중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순기능적 통합을 저해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서 우리 공동체의 급속한 해체를 야기하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종중을 둘러싼 이상의 제반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여 혼란을 잠재움으로써, 사회통합을 높일 수 있는 적절한 방안으로는 입법적 해결 외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입법을 하는 경우, 전문가들이나 유관기관단체 및 일반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사전절차도 반드시 거쳐야 하겠지만, 다음의 사항만큼은 반드시 입법에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로, 종중의 사단성[社團性]을 강화하고 그 존재를 명백히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종중의 조직과 의사[議事]에 관한 일반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종중조직을 정비하게 하고, 법인격을 부여하거나 종중등록부와 같은 공부[公簿]등록을 의무화하여, 종중운영의 투명성민주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법적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한다. 

둘째로, 종원의 확정방법과 그 권리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종중의 사단성을 강화하고 공시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종중의 대내외적 공신력을 높이는 것을 전제로 권리와 의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되, 특히 종중원의 권리내용으로 선거권피선거권, 토론 및 (무기명비밀투표방식에 의한)표결권, 총회소집 요구권, 각종 장부열람권 등을 명시해 총유권자로서의 종중원들의 권리보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종중원의 자격을 성년남녀 전원에게 기계적으로 부여할 것이 아니라, 종중에 신고하거나 종원으로서 등록을 마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로, 조직과 의사[議事]에 관한 방법과 절차를 명백히 해야 한다.

-최고의결기구로서의 총회기능을 실질화하고, 종중단체의 특성상 원로회의 설치를 의무화하여 세대간 갈등을 완화조정하고, 경로효친사상과 같은 전통문화가치 창달도 유념하여야 한다. 특히 총회에서 일반 종중원들의 (반대)토론권, 표결권 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소수자보호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넷째로, 종중관련 소송의 절차와 판결의 효력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종중(단체)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종중법‘)의 제정은 잠시도 더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전통문화가치의 쇠락이 우리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는 심각한 현실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성씨본관제도의 현실적 구현체인 종중(단체)을 현대사회 가치기준에 맞춰 입법적으로 규율해주는 일이야말로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하고 사회통합기능을 근저에서부터 회생시킴과 동시에, 전통문화도 창달해 나아가는 획기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이는 입법비용이나 사회적 비용, 어느 측면에서나 큰 부담으로 작용할 문제도 아니어서, 이에 관한 더 이상의 입법지연이나 해태는 상상력과 통찰력의 빈곤, 혹은 무능력에서 유래하는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다시 한 번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종중법 제정을 촉구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프로필
▶서울대 인문대 졸업(철학전공,경제학 부전공/문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학생기자(제39기 수석)
▶제천학샘학원,종로학원 원장
▶첨단에너지(주)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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